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BNY는 사내 AI를 설명할 때 ‘도구’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디지털 직원(digital employee)‘이라고 부릅니다. 이름만 바꾼 마케팅 표현으로 보기 쉽지만, 실제 운영 방식을 보면 호칭보다 그 뒤에 붙은 절차가 핵심입니다.
이 사례에서 옮길 만한 것은 은행이 쓰는 모델의 성능이 아닙니다. 에이전트 하나하나에 무엇을 맡고,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고, 누가 결과를 책임지는지를 사람 채용하듯 정의해 두었다는 점입니다. 중소기업이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부분도 여기에 있습니다.
BNY가 공개한 숫자는 무엇인가
OpenAI가 공개한 BNY 사례에 따르면 BNY 직원 2만 명 이상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고 있고, 전체 인력의 99%가 생성형 AI 교육을 이수했으며, 실제 운영 중인 AI 활용 사례는 125건 이상입니다. 사내 플랫폼 ‘엘리자(Eliza)‘가 모델 접근·권한·보안·감독을 한곳에서 표준화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디지털 직원’의 수는 자료마다 시점이 다릅니다. Axios가 2025년 10월에 보도한 내용에서는 100명 이상으로, 결제 오류 정정·엔지니어링·코드 수정 같은 업무를 맡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보도에서 BNY 최고경영자 로빈 빈스는 이들이 로그인 계정과 이메일 주소를 갖고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환경 안에서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붙고 업무 평가도 받습니다.
숫자를 인용할 때는 시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아래 표의 수치는 2026년 9월 기준으로 확인 가능한 공개 자료를 정리한 것이며, 조사 주체가 서로 다릅니다.
| 항목 | 공개된 수치 | 출처와 시점 |
|---|---|---|
| 에이전트를 직접 만드는 직원 | 2만 명 이상 | OpenAI 사례 페이지 |
| 생성형 AI 교육 이수율 | 전체 인력의 99% | OpenAI 사례 페이지 |
| 운영 중인 AI 활용 사례 | 125건 이상 | OpenAI 사례 페이지 |
| ‘디지털 직원’ 수 | 100명 이상 | Axios, 2025년 10월 |
| 계약서 검토 시간 | 4시간 → 1시간(연 3,000건 이상 대상) | OpenAI 사례 페이지 |
활용 사례 수와 디지털 직원 수는 같은 지표가 아닙니다. 활용 사례는 업무 단위이고, 디지털 직원은 그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도록 신원을 부여받은 주체입니다. 이 구분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도구’와 ‘직원’은 무엇이 다른가
같은 언어모델을 쓰더라도 그것을 도구로 두느냐 직무를 가진 주체로 두느냐에 따라 회사에 남는 것이 달라집니다.
| 구분 | 도구로 둘 때 | 직무를 정의할 때 |
|---|---|---|
| 사용 단위 | 개인이 필요할 때 각자 호출 | 정해진 업무 흐름에 상시 배치 |
| 접근 권한 | 사용자의 권한을 그대로 따름 | 담당 업무에 필요한 범위만 별도 부여 |
| 산출물 | 채팅 화면에 남고 흩어짐 | 정해진 형식으로 저장되고 추적됨 |
| 책임 소재 | 그때그때 쓴 사람 | 지정된 사람이 결과를 검수하고 책임 |
| 실패했을 때 | 프롬프트를 다시 씀 | 어느 단계에서 어긋났는지 기록이 남음 |
| 회사에 남는 것 | 개인의 요령 | 재사용 가능한 업무 규칙 |
BNY 부사장급 법무 담당인 와트 와나파는 같은 자료에서 “좋은 거버넌스 덕분에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규칙이 속도를 늦춘다는 통념과 반대되는 진술인데, 오른쪽 열의 항목들이 미리 정해져 있으면 새 업무에 에이전트를 붙일 때마다 처음부터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모델은 살 수 있지만 이 구조는 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BNY가 쓰는 언어모델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같은 모델을 국내 어떤 회사도 API로 구독할 수 있습니다. 성능이 뛰어난 도구는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면 되는 자원이고, 그래서 그 자체로는 경쟁 우위가 되지 않습니다.
차이는 그다음에 생깁니다. 어떤 업무를 넘길지 판단하고, 그 판단을 권한과 검수 기준으로 옮겨 적고, 실패한 사례를 규칙에 반영해 다시 쌓는 과정은 회사마다 다르게 축적됩니다. 이 축적물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없고, 경쟁사가 그대로 복사할 수도 없습니다. BNY가 만든 진짜 자산은 ‘엘리자’라는 화면이 아니라, 2만 명이 만든 에이전트가 같은 절차를 통과하도록 만든 그 통로입니다.
도구는 구매의 문제이고, 위임 기준은 축적의 문제입니다.
2만 명이 만든다는 말의 진짜 의미
직원 2만 명이 에이전트를 만든다는 문장은 얼핏 ‘사람의 일이 줄어든다’로 읽힙니다. 실제 구조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AI가 처리하는 업무 범위가 넓어질수록, 무엇을 맡길지 고르고 결과를 검증하고 예외를 처리하는 사람의 역량이 성과를 좌우하게 됩니다. BNY가 전체 인력의 99%에게 교육을 돌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만드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판단하는 사람도 같은 수만큼 필요합니다.
AI 활용 습관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사내 캠페인 이후 에이전트 제작 활동이 46% 늘었다는 수치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숫자는 모델이 좋아져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 안전하게 시도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서 나온 결과입니다.
중소기업이 지금 옮길 수 있는 것
수만 명 규모의 플랫폼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반복 빈도가 높은 업무 하나를 골라, 아래 다섯 칸을 문서로 채우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채우다 막히는 칸이 있다면 그 업무는 아직 넘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 항목 | 정해야 할 내용 | 비워두면 생기는 일 |
|---|---|---|
| 역할 | 이 에이전트가 맡는 업무 한 문장 | 요청이 올 때마다 범위가 달라짐 |
| 입력 | 어떤 자료를 어떤 형식으로 받는가 | 매번 사람이 자료를 다시 정리 |
| 권한 | 어떤 시스템·문서에 접근하는가 | 필요 이상의 정보에 접근하거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 못 함 |
| 산출물 | 결과의 형식과 저장 위치 | 결과가 개인 화면에만 남고 사라짐 |
| 검수와 중단 | 누가 확인하고, 어떤 경우 사람에게 넘기는가 | 틀린 결과가 그대로 나감 |
어떤 업무부터 이 표에 올릴지는 견적서 한 건에 3시간, 어디서 시간이 새고 있나에서 다룬 방식으로 고르면 됩니다. 반복 빈도가 높고, 실패해도 사람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내부 업무가 첫 대상으로 적합합니다.
특히 마지막 칸이 핵심입니다. BNY가 디지털 직원에게 담당자와 평가를 붙인 것도 같은 이유로 보입니다. 자동으로 도는 업무일수록 멈춰야 할 조건을 사람이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어디까지 되고 어디부터 안 되나
이 사례를 그대로 옮기기 어려운 지점도 분명합니다.
첫째, BNY의 업무는 상당수가 규칙이 명문화된 영역입니다. 결제 지시 검증이나 계약서 검토는 판단 기준이 이미 문서로 존재합니다. 반대로 기준이 담당자 머릿속에만 있는 업무는 에이전트에게 넘기는 순간 AI가 기준을 지어내게 됩니다. 넘기기 전에 기준을 쓰는 일이 먼저입니다.
둘째, 계약서 검토 시간이 4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는 수치는 초안 작성 단계의 효율입니다. 최종 책임까지 넘어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확인하는 1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같이 읽어야 합니다.
셋째, 이 구조는 특정 외부 플랫폼에 깊이 연동될수록 평소 효율이 올라가지만 정책이나 요금이 바뀔 때 흔들림도 커집니다. 업무 로그와 기준 문서를 플랫폼 바깥에 따로 보관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도구를 바꿔도 규칙은 남아야 합니다.
정리
BNY 사례에서 인상적인 것은 규모가 아니라 순서입니다. 좋은 모델을 먼저 고른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맡기고 누가 책임질지를 먼저 정한 뒤 그 위에 모델을 얹었습니다.
지금 확인할 세 가지는 이렇습니다.
- 우리 회사가 AI에 넘긴 업무 중, 역할과 검수자가 문서로 적힌 것은 몇 개인가
- AI가 만든 결과물이 개인 화면이 아니라 회사가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곳에 남고 있는가
-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어느 단계에서 어긋났는지 되짚을 기록이 있는가
세 질문 모두 도구를 바꿔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쓰기 시작해야 답이 생깁니다.